1. 영랑동
가. 영랑동(永郞洞)
1966년 동(洞)제 실시 때, 종래의 속초리(束草里) 1구를 영랑호(永郞湖)에 인접하였다고 하여 영랑동으로 명명하였다.
이후 1998년 행정동의 통폐합으로 인해 영랑동과 장사동이 합쳐 영랑동으로 통합되었다.
삽짜개 - 영랑동(永郞洞) 바닷가 마을. 남쪽으로 성황봉(城隍峰) 산등성이를 경계로 동명동(東明洞) 마짜개 마을과 인접해 있다. 바다 사람들의 말로 새쪽은 동쪽, 마쪽은 남쪽을 뜻하는데, 이 고장 방언으로 새쪽을 새짝, 마쪽을 마짝이라고도 하고, 새짝 마을, 마짝 마을의 의미로 삽짜개, 마짜개로 불린다.
영랑호(永郞湖) - 속초시 북쪽에 위치한 큰 석호(潟湖)로 모래가 퇴적하여 발달한 것이다. 영랑동, 동명동, 금호동, 장사동으로 둘러싸여 있다. 영랑교 밑의 수로를 통해 동해와 연결된다. 호수로 들어오는 물은 장천천이 유일한데 농경지를 지나 흐르면서 호수로 유입된다. 영랑호라는 이름은 『삼국유사』의 기록을 근거로 신라의 화랑인 영랑(永郞)이 이 호수에서 풍류를 즐긴 까닭으로 영랑호라고 이름 지어졌다고 한다.
영랑교(永郞橋) - 영랑호(永郞湖)의 바다쪽 출구에 놓여 영랑동과 장사동을 연결하는 다리.
영랑시장(永郞市場) - 영랑동에 위치한 시장. 현재는 조그마한 시장이나, 속초(束草)의 중심지가 영랑동, 동명동이었을 때는 여기가 제일 크고 먼저 생겼으므로 제일시장이라고도 했었다. 또 속초가 시(市)로 승격되어 동(洞)제가 실시되기 전에는 영랑동이 속초리 1구였으므로 1구 시장이라고도 했다.
개안골 - 지금 속초문화원(束草文化院)이 세워진 지점에서 동진리조텔 건물이 선 앞쪽 일대로 주택들이 들어선 둥근 원형의 옛 논밭 자리였던 곳. 개안골은 현 속초지방법원 쪽에서 뻗어 내린 산맥이 서북쪽을 둘러 안고 서쪽으로는 현재까지 남아 있는 보광사 뒷산이 감싸고 있어 분지모양을 띤 논밭 자리였다.
개안논 - 개안골 안에 있던 논. 지대가 영랑 호수보다 낮아 가뭄이 심할 때는 영랑 호수를 끌어들여 농사를 지었고, 반대로 장마가 져서 개안 논물이 호수보다 높으면 호수 쪽으로 빼내곤 하였다.
포교당자리 - 일제 시대 때 설악심상소학교(일본인 자녀들 학교)가 있었던 자리.
나. 장사동(章沙洞)
장사동은 과거에 고성군(高城郡) 지역이었다. 조선 시대 말까지는 간성군(杆城郡) 토성면에 속하였다. 일제 시대에 들어와 간성군(杆城郡)이 고성군(高城郡)과 양양군(襄陽郡)에 분속되면서 양양군으로 편입되기도 하였지만 영랑호까지 간성군 영역이었다.
그러던 것이 속초의 발전에 따라 생활 편의상 1973년 7월 1일 대통령령 제6542호로 고성군 토성면(土城面) 사진리(沙津里)와 장천리(章川里)가 속초시로 편입되었고, 두 동리가 합쳐져서 두 동리의 첫 글자를 따서 장사동(章沙洞)으로 불리게 되었다.
1998년 행정동의 통폐합으로 인해 영랑동과 장사동이 합쳐 영랑동으로 통합되었다.
1) 사진리(沙津里)
장사동의 중심 지역이다. 원래 고성군 토성면 사진리(沙津里)로 되어있던 것이, 1973년 속초시로 편입되면서 장천리(章川里)와 합쳐져서 장사동(章沙洞)으로 불리게 되었다. 조선 후기 읍지에는 사야지진리(沙也只津里)라고 기록되어 있던 것이 일제 시대부터 줄어서 사진리라고 불리었다. 속칭으로는 지금도 모래기, 나룻모래기라고 한다.
사진리 지역은 본래 육지가 아닌 바다였고 영랑호도 호수가 아니라 바다였다. 그러던 것이 오랜 세월에 걸쳐 모래가 쌓여서 영랑호는 호수로 변하게 되고, 사진리에는 마을이 형성되었다. 모래톱에 형성된 마을이므로 모래기라고 불리었고 이것을 한자로 사야지(沙也只)라고 표기한 것이다.
강장군산(姜將軍山) - 속초고등학교 뒷편(북쪽) 산. 강장군(姜將軍)이란 장사가 이곳에 묻혔다고 한다. 전설에 의하면 강장군이라는 힘이 무척 센 장사가 용촌리(龍村里) 번개(예전에는 호수였으나 지금은 논으로 변했음)에서 태어났고, 용촌리(龍村里) 용지호(龍池湖, 순개 또는 방축개라고도 한다)에서는 강장군(姜將軍)이 탄 용마(龍馬)가 나왔다고 한다.
고바우 - 영랑호 동북쪽 가에 있는 바위. 코처럼 생겼다고 하여(고는 코의 古語) 고바우라고 하며, 그 부근 갯가를 고바우에 연유하여 고밧개라고 한다. 다른 말로 신선이 놀던 바위라고 하여 신선바위, 또는 바위 형상이 윤선(輪船)같다고 하여 윤선바위, 두꺼비 같다고 하여 두꺼비바위라고도 한다.
고밧개(고바웃개) - 영랑호 동북쪽 고바우 부근의 갯가. 고바위가 있는 갯가라는 뜻으로 고바웃개라고 하던 것이 고밧개로 변하였다.
고추골 - 마을 서쪽, 영랑호 북서쪽에 있는 골짜기.
노적(露積)바위 - 영랑호 동북쪽 마을 안에 있는 바위. 바위 형상이 노적(露積)가리를 쌓은 것 같았으나, 지금은 깨어 부서져 없어지고 바닥만 남아 있다.
버리개 - 된고개 밑(동남쪽) 갯가. 벌판에 위치한 갯가라는 뜻의 벌개가 변해서 버리개가 된 것으로 추정된다.
빨주박(박쥐바위) - 영랑호 북쪽 가에 있는 바위. 바위에 박쥐가 서식하므로 박쥐바위라고 하던 것이 빨주박으로 변했다.
뽁쟁이 - 영랑호 북쪽 엄달개 서편 골짜기.
서낭골 - 속초고등학교 뒷 골짜기. 예전에 서낭당이 있었다고 한다.
서낭산 - 흰고개 동편, 해경 충혼탑(海警忠魂塔)이 위치한 산. 산의 남쪽에 서낭당이 위치하고 있다.
엄달개 - 현재 속초고등학교가 위치하고 있는 계곡으로 응달진 곳이다.
해경 충혼탑(海警忠魂塔) - 우리나라 해안을 지키다 순국한 해양경찰들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하여 세운 탑. 흰고개 동편 서낭산에 위치하고 있다.
형제바위(兄弟岩) - 마을 앞 바닷가에 위치한 두 개의 바위. 두 개의 바위가 형제처럼 나란히 위치하고 있다.
황새골 - 영랑호 북쪽, 마을 서쪽에 위치한 골짜기. 전에 황새가 많았다.
흰고개 - 마을 북쪽 고성군 토성면 용촌리와 연결되는 큰 고개. 백토가 산출되므로 흰고개라고 하였다.
2) 장천리(章川里, 노루내)
장천리(章川里)는 본래 ‘노루 장(獐)’자 장천리(獐川里)였던 것이, 일제 시대부터 ‘글 장(章)’자 장천리(章川里)로 바뀌었다. 장천(章川)의 ‘노루 장(獐)’은 마을 서쪽 원암리(元岩里)로 넘어가는 노루목 고개에서 유래한 것이다. 마을 앞 냇가가 노루목고개에서 시작되어 흐르므로 노루내라고 하던 것을 한자로 장천(獐川)이라고 한 것이다. 후에 장천(章川)으로 변하였다.
국사봉(國師峰 국수봉, 국시봉, 된봉) - 고성군 토성면 용촌리와의 경계에 위치한 산봉우리
노루목 고개 - 장천리(章川里)에서 원암리(元岩里)로 넘어가는 고개. 전국적으로 무수히 분포하는 다른 노루목 고개와 마찬가지로 고개가 길게 늘어졌으므로 늘으목, 늘목이라고 하던 것이 노루목으로 변한 것으로 추정된다.
갯버덩 - 마을 동쪽 영랑호에 인접한 버덩.
건넝골 - 마을 동남쪽 골짜기.
고추골 - 마을 북동쪽 국사봉 바로 서편 골짜기.
골논골 - 마을 북동쪽 큰바위골과 방축골 사이의 골짜기.
던바우 - 마을 동쪽 던바우골에 있는 바위.
던바우골 - 마을 동쪽 샘치골 다음(동쪽)에 있는 골짜기.
독골 마을 - 서쪽에 있는 골짜기.
독바우 - 독골에 있는 바위.
됫골 마물 - 뒷(북)쪽에 있는 골짜기.
망태골 - 마을 남쪽에 있는 골짜기. 예전에는 마을 진입로가 망태골로 뚫려 있었다.
물안골 - 마을 서쪽 큰령골에서 오른편(북쪽)으로 갈라진 골짜기. 물레방아가 있어서 물방아골이라고 부르던 것이 물안골로 변한 것으로 추정된다.
바우배기 - 큰령골에서 왼편(남쪽)으로 갈라진 골짜기. 현재 한화리조트 바로 뒤편으로 큰 바위가 산등성이에 박혀 있다.
방축(防築)골 - 마을 북동쪽 골짜기. 예전에 방축(防築)이 있었다고 한다.
불매앞 - 치시골 입구를 가리키는 말. 예전에 이곳에 대장간이 있어서 풀매(풀무의 사투리)를 사용하여 불을 일으켜 쇠를 녹였으므로, 풀매를 사용하는 대장간 앞이라는 의미로 풀매앞이라고 하던 것이 불매앞으로 변화되었다.
샘치골 - 마을 남동쪽 건넝골과 던바우골 사이의 골짜기.
서낭봉 - 마을 앞 큰령골 입구와 독골 입구 사이의 산봉우리. 서낭당이 있다.
싱싱골 - 마을 서쪽 큰령골에서 오른쪽(북쪽)으로 갈라지는 골짜기. 물안골 서쪽이다.
안산 - 마을 앞산. 예전에는 이곳에 서낭당이 있었다.
여바우골 - 마을 동북쪽 골짜기. 여우 바우골이 줄어들어서 여바우골이 되었다.
여우바우 - 여바우골에 있는 바위. 바위에 굴이 있는데 예전에 여우가 굴에서 살았다고 한다.
장재골 - 마을 남쪽에 있는 골짜기.
치시골 - 마을 남쪽에 있는 골짜기.
큰령골 - 마을 서쪽으로 뚫린 큰 골짜기. 큰령, 즉 미시령(彌矢嶺) 쪽으로 가는 길에 위치한 골짜기라는 뜻이다.
큰 바위 - 큰바위골에 있는 바위.
큰 바위골 - 마을 북동쪽에 있는 골짜기,
타앞 - 마을 남쪽 불매앞과 망태골 사이를 가리키는 말.
1. 영랑동
가. 영랑동(永郞洞)
1966년 동(洞)제 실시 때, 종래의 속초리(束草里) 1구를 영랑호(永郞湖)에 인접하였다고 하여 영랑동으로 명명하였다.
이후 1998년 행정동의 통폐합으로 인해 영랑동과 장사동이 합쳐 영랑동으로 통합되었다.
삽짜개 - 영랑동(永郞洞) 바닷가 마을. 남쪽으로 성황봉(城隍峰) 산등성이를 경계로 동명동(東明洞) 마짜개 마을과 인접해 있다. 바다 사람들의 말로 새쪽은 동쪽, 마쪽은 남쪽을 뜻하는데, 이 고장 방언으로 새쪽을 새짝, 마쪽을 마짝이라고도 하고, 새짝 마을, 마짝 마을의 의미로 삽짜개, 마짜개로 불린다.
영랑호(永郞湖) - 속초시 북쪽에 위치한 큰 석호(潟湖)로 모래가 퇴적하여 발달한 것이다. 영랑동, 동명동, 금호동, 장사동으로 둘러싸여 있다. 영랑교 밑의 수로를 통해 동해와 연결된다. 호수로 들어오는 물은 장천천이 유일한데 농경지를 지나 흐르면서 호수로 유입된다. 영랑호라는 이름은 『삼국유사』의 기록을 근거로 신라의 화랑인 영랑(永郞)이 이 호수에서 풍류를 즐긴 까닭으로 영랑호라고 이름 지어졌다고 한다.
영랑교(永郞橋) - 영랑호(永郞湖)의 바다쪽 출구에 놓여 영랑동과 장사동을 연결하는 다리.
영랑시장(永郞市場) - 영랑동에 위치한 시장. 현재는 조그마한 시장이나, 속초(束草)의 중심지가 영랑동, 동명동이었을 때는 여기가 제일 크고 먼저 생겼으므로 제일시장이라고도 했었다. 또 속초가 시(市)로 승격되어 동(洞)제가 실시되기 전에는 영랑동이 속초리 1구였으므로 1구 시장이라고도 했다.
개안골 - 지금 속초문화원(束草文化院)이 세워진 지점에서 동진리조텔 건물이 선 앞쪽 일대로 주택들이 들어선 둥근 원형의 옛 논밭 자리였던 곳. 개안골은 현 속초지방법원 쪽에서 뻗어 내린 산맥이 서북쪽을 둘러 안고 서쪽으로는 현재까지 남아 있는 보광사 뒷산이 감싸고 있어 분지모양을 띤 논밭 자리였다.
개안논 - 개안골 안에 있던 논. 지대가 영랑 호수보다 낮아 가뭄이 심할 때는 영랑 호수를 끌어들여 농사를 지었고, 반대로 장마가 져서 개안 논물이 호수보다 높으면 호수 쪽으로 빼내곤 하였다.
포교당자리 - 일제 시대 때 설악심상소학교(일본인 자녀들 학교)가 있었던 자리.
나. 장사동(章沙洞)
장사동은 과거에 고성군(高城郡) 지역이었다. 조선 시대 말까지는 간성군(杆城郡) 토성면에 속하였다. 일제 시대에 들어와 간성군(杆城郡)이 고성군(高城郡)과 양양군(襄陽郡)에 분속되면서 양양군으로 편입되기도 하였지만 영랑호까지 간성군 영역이었다.
그러던 것이 속초의 발전에 따라 생활 편의상 1973년 7월 1일 대통령령 제6542호로 고성군 토성면(土城面) 사진리(沙津里)와 장천리(章川里)가 속초시로 편입되었고, 두 동리가 합쳐져서 두 동리의 첫 글자를 따서 장사동(章沙洞)으로 불리게 되었다.
1998년 행정동의 통폐합으로 인해 영랑동과 장사동이 합쳐 영랑동으로 통합되었다.
1) 사진리(沙津里)
장사동의 중심 지역이다. 원래 고성군 토성면 사진리(沙津里)로 되어있던 것이, 1973년 속초시로 편입되면서 장천리(章川里)와 합쳐져서 장사동(章沙洞)으로 불리게 되었다. 조선 후기 읍지에는 사야지진리(沙也只津里)라고 기록되어 있던 것이 일제 시대부터 줄어서 사진리라고 불리었다. 속칭으로는 지금도 모래기, 나룻모래기라고 한다.
사진리 지역은 본래 육지가 아닌 바다였고 영랑호도 호수가 아니라 바다였다. 그러던 것이 오랜 세월에 걸쳐 모래가 쌓여서 영랑호는 호수로 변하게 되고, 사진리에는 마을이 형성되었다. 모래톱에 형성된 마을이므로 모래기라고 불리었고 이것을 한자로 사야지(沙也只)라고 표기한 것이다.
강장군산(姜將軍山) - 속초고등학교 뒷편(북쪽) 산. 강장군(姜將軍)이란 장사가 이곳에 묻혔다고 한다. 전설에 의하면 강장군이라는 힘이 무척 센 장사가 용촌리(龍村里) 번개(예전에는 호수였으나 지금은 논으로 변했음)에서 태어났고, 용촌리(龍村里) 용지호(龍池湖, 순개 또는 방축개라고도 한다)에서는 강장군(姜將軍)이 탄 용마(龍馬)가 나왔다고 한다.
고바우 - 영랑호 동북쪽 가에 있는 바위. 코처럼 생겼다고 하여(고는 코의 古語) 고바우라고 하며, 그 부근 갯가를 고바우에 연유하여 고밧개라고 한다. 다른 말로 신선이 놀던 바위라고 하여 신선바위, 또는 바위 형상이 윤선(輪船)같다고 하여 윤선바위, 두꺼비 같다고 하여 두꺼비바위라고도 한다.
고밧개(고바웃개) - 영랑호 동북쪽 고바우 부근의 갯가. 고바위가 있는 갯가라는 뜻으로 고바웃개라고 하던 것이 고밧개로 변하였다.
고추골 - 마을 서쪽, 영랑호 북서쪽에 있는 골짜기.
노적(露積)바위 - 영랑호 동북쪽 마을 안에 있는 바위. 바위 형상이 노적(露積)가리를 쌓은 것 같았으나, 지금은 깨어 부서져 없어지고 바닥만 남아 있다.
버리개 - 된고개 밑(동남쪽) 갯가. 벌판에 위치한 갯가라는 뜻의 벌개가 변해서 버리개가 된 것으로 추정된다.
빨주박(박쥐바위) - 영랑호 북쪽 가에 있는 바위. 바위에 박쥐가 서식하므로 박쥐바위라고 하던 것이 빨주박으로 변했다.
뽁쟁이 - 영랑호 북쪽 엄달개 서편 골짜기.
서낭골 - 속초고등학교 뒷 골짜기. 예전에 서낭당이 있었다고 한다.
서낭산 - 흰고개 동편, 해경 충혼탑(海警忠魂塔)이 위치한 산. 산의 남쪽에 서낭당이 위치하고 있다.
엄달개 - 현재 속초고등학교가 위치하고 있는 계곡으로 응달진 곳이다.
해경 충혼탑(海警忠魂塔) - 우리나라 해안을 지키다 순국한 해양경찰들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하여 세운 탑. 흰고개 동편 서낭산에 위치하고 있다.
형제바위(兄弟岩) - 마을 앞 바닷가에 위치한 두 개의 바위. 두 개의 바위가 형제처럼 나란히 위치하고 있다.
황새골 - 영랑호 북쪽, 마을 서쪽에 위치한 골짜기. 전에 황새가 많았다.
흰고개 - 마을 북쪽 고성군 토성면 용촌리와 연결되는 큰 고개. 백토가 산출되므로 흰고개라고 하였다.
2) 장천리(章川里, 노루내)
장천리(章川里)는 본래 ‘노루 장(獐)’자 장천리(獐川里)였던 것이, 일제 시대부터 ‘글 장(章)’자 장천리(章川里)로 바뀌었다. 장천(章川)의 ‘노루 장(獐)’은 마을 서쪽 원암리(元岩里)로 넘어가는 노루목 고개에서 유래한 것이다. 마을 앞 냇가가 노루목고개에서 시작되어 흐르므로 노루내라고 하던 것을 한자로 장천(獐川)이라고 한 것이다. 후에 장천(章川)으로 변하였다.
국사봉(國師峰 국수봉, 국시봉, 된봉) - 고성군 토성면 용촌리와의 경계에 위치한 산봉우리
노루목 고개 - 장천리(章川里)에서 원암리(元岩里)로 넘어가는 고개. 전국적으로 무수히 분포하는 다른 노루목 고개와 마찬가지로 고개가 길게 늘어졌으므로 늘으목, 늘목이라고 하던 것이 노루목으로 변한 것으로 추정된다.
갯버덩 - 마을 동쪽 영랑호에 인접한 버덩.
건넝골 - 마을 동남쪽 골짜기.
고추골 - 마을 북동쪽 국사봉 바로 서편 골짜기.
골논골 - 마을 북동쪽 큰바위골과 방축골 사이의 골짜기.
던바우 - 마을 동쪽 던바우골에 있는 바위.
던바우골 - 마을 동쪽 샘치골 다음(동쪽)에 있는 골짜기.
독골 마을 - 서쪽에 있는 골짜기.
독바우 - 독골에 있는 바위.
됫골 마물 - 뒷(북)쪽에 있는 골짜기.
망태골 - 마을 남쪽에 있는 골짜기. 예전에는 마을 진입로가 망태골로 뚫려 있었다.
물안골 - 마을 서쪽 큰령골에서 오른편(북쪽)으로 갈라진 골짜기. 물레방아가 있어서 물방아골이라고 부르던 것이 물안골로 변한 것으로 추정된다.
바우배기 - 큰령골에서 왼편(남쪽)으로 갈라진 골짜기. 현재 한화리조트 바로 뒤편으로 큰 바위가 산등성이에 박혀 있다.
방축(防築)골 - 마을 북동쪽 골짜기. 예전에 방축(防築)이 있었다고 한다.
불매앞 - 치시골 입구를 가리키는 말. 예전에 이곳에 대장간이 있어서 풀매(풀무의 사투리)를 사용하여 불을 일으켜 쇠를 녹였으므로, 풀매를 사용하는 대장간 앞이라는 의미로 풀매앞이라고 하던 것이 불매앞으로 변화되었다.
샘치골 - 마을 남동쪽 건넝골과 던바우골 사이의 골짜기.
서낭봉 - 마을 앞 큰령골 입구와 독골 입구 사이의 산봉우리. 서낭당이 있다.
싱싱골 - 마을 서쪽 큰령골에서 오른쪽(북쪽)으로 갈라지는 골짜기. 물안골 서쪽이다.
안산 - 마을 앞산. 예전에는 이곳에 서낭당이 있었다.
여바우골 - 마을 동북쪽 골짜기. 여우 바우골이 줄어들어서 여바우골이 되었다.
여우바우 - 여바우골에 있는 바위. 바위에 굴이 있는데 예전에 여우가 굴에서 살았다고 한다.
장재골 - 마을 남쪽에 있는 골짜기.
치시골 - 마을 남쪽에 있는 골짜기.
큰령골 - 마을 서쪽으로 뚫린 큰 골짜기. 큰령, 즉 미시령(彌矢嶺) 쪽으로 가는 길에 위치한 골짜기라는 뜻이다.
큰 바위 - 큰바위골에 있는 바위.
큰 바위골 - 마을 북동쪽에 있는 골짜기,
타앞 - 마을 남쪽 불매앞과 망태골 사이를 가리키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