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청호동(靑湖洞)
본래는 사람이 거의 살지 않던 곳이었으나, 수복 이후 피난민들의 거주로 마을이 형성되어 속초리 5구가 되었다. 1966년 12개동으로 개편될 때 청호동(靑湖洞)으로 바뀌었다. 한국전쟁 때 청호동에는 정어리공장이 두세 군데가 있는 작은 어촌 마을이었다. 이후 피난민들이 유입되면서 일시적인 움막 형태의 집들이 들어서 신포마을, 앵고치마을, 짜꼬치마을, 신창마을, 정평마을, 홍원마을, 단천마을, 영흥마을, 이원마을 등의 집단촌이 형성되어 있었다.
청호(靑湖)라는 이름은 청초호(靑草湖)에서 온 것이다. 청호동에는 함경도(咸鏡道)에서 내려 온 피난민들이 많이 거주하는 까닭으로, 함경도(咸鏡道) 사투리 ‘아바이’를 사용하여 ‘아바이 마을’이라고도 한다.

< 사진 7-4-1 > 해방전 갯배나루 전경
갯배나루 - 중앙동과 청호동을 연결하는 갯배를 타는 곳. 이전에는 5구 도선장이라고도 했다.
조도(鳥島, 새섬) - 청호동 앞 바다에 있는 섬. 우리말로는 새섬이고, 한자(漢字)로는 조도이다. 강원도지사 이용(李龍)이 이 섬에 정자를 짓고 자신의 이름 ‘용(龍)’자와 ‘풀 초(草)’자를 따서 용초정(龍草亭)이라고 이름 붙인 일로 인하여 용초도(龍草島)란 이름도 있다. 현재 정자는 헐리고 조그만 등대만 서 있다.
주교(舟橋, 배다리) - 반부득 옆에 있는 마을. 오늘날의 청호동이다. 동쪽은 동해 바다요 서쪽은 청초 호수, 그 복판으로 다리 모양 육지가 뻗어서 도선장(갯배)에 이어졌기에 부두와 같다하여 청호동을 배가 닿은 부두, 반부득 또는 배다리라고 했다. 한자로 주교(舟橋)라고도 한다. 해방 전까지 배로 건너다니던 사진이 있다.
4. 청호동(靑湖洞)
본래는 사람이 거의 살지 않던 곳이었으나, 수복 이후 피난민들의 거주로 마을이 형성되어 속초리 5구가 되었다. 1966년 12개동으로 개편될 때 청호동(靑湖洞)으로 바뀌었다. 한국전쟁 때 청호동에는 정어리공장이 두세 군데가 있는 작은 어촌 마을이었다. 이후 피난민들이 유입되면서 일시적인 움막 형태의 집들이 들어서 신포마을, 앵고치마을, 짜꼬치마을, 신창마을, 정평마을, 홍원마을, 단천마을, 영흥마을, 이원마을 등의 집단촌이 형성되어 있었다.
청호(靑湖)라는 이름은 청초호(靑草湖)에서 온 것이다. 청호동에는 함경도(咸鏡道)에서 내려 온 피난민들이 많이 거주하는 까닭으로, 함경도(咸鏡道) 사투리 ‘아바이’를 사용하여 ‘아바이 마을’이라고도 한다.
< 사진 7-4-1 > 해방전 갯배나루 전경
갯배나루 - 중앙동과 청호동을 연결하는 갯배를 타는 곳. 이전에는 5구 도선장이라고도 했다.
조도(鳥島, 새섬) - 청호동 앞 바다에 있는 섬. 우리말로는 새섬이고, 한자(漢字)로는 조도이다. 강원도지사 이용(李龍)이 이 섬에 정자를 짓고 자신의 이름 ‘용(龍)’자와 ‘풀 초(草)’자를 따서 용초정(龍草亭)이라고 이름 붙인 일로 인하여 용초도(龍草島)란 이름도 있다. 현재 정자는 헐리고 조그만 등대만 서 있다.
주교(舟橋, 배다리) - 반부득 옆에 있는 마을. 오늘날의 청호동이다. 동쪽은 동해 바다요 서쪽은 청초 호수, 그 복판으로 다리 모양 육지가 뻗어서 도선장(갯배)에 이어졌기에 부두와 같다하여 청호동을 배가 닿은 부두, 반부득 또는 배다리라고 했다. 한자로 주교(舟橋)라고도 한다. 해방 전까지 배로 건너다니던 사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