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노학동(蘆鶴洞)
1966년 동(洞)제 실시 때, 종래의 노리(蘆里), 도리원리(桃李源里), 이목리(梨木里), 척산리(尺山里), 신흥리(新興里)를 합쳐서 노학동(蘆鶴洞)이라고 명명하였다. 노학이란 이름은 노리(蘆里)의 ‘노(蘆)’자와 척산리(尺山里) 학사평(鶴沙坪)의 ‘학(鶴)’자를 딴 것이다.
조선 후기 읍지(邑誌)에는 현재의 노학동(蘆鶴洞) 지역에는 행정상 동리가 없었다. 그러므로 당시에는 사람들이 많이 거주하지 않았던 것을 알 수 있고, 행정상 논산리(論山里)에 속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 후 사람들의 거주가 늘어 일제 시대부터 행정상 노리(蘆里)가 신설되었다. 습지대의 개발로 인구가 늘어 1942년 속초면(束草面)이 속초읍(束草邑)으로 승격될 때, 노리(蘆里)가 노리(蘆里), 도리원리(桃李源里), 이목리(梨木里), 척산리(尺山里)의 4동리로 나뉘어졌다.
그리고 1962년 타도 지역에서 많은 인구가 뒷버덩으로 집단 이주해 와서 신흥리(新興里)가 신설되었으나, 1963년 속초시(束草市)로 승격되고 1966년 동(洞)제가 실시됨에 따라 종래의 노리(蘆里) 지역이 모두 합쳐져서 노학동(蘆鶴洞)으로 명명되었다.
1998년 행정동의 통폐합으로 인해 노학동과 교동 일부가 노학동으로 통합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가. 노리(蘆里)
노학동의 중심 마을이며, 갈골, 노동(蘆洞), 노동리(蘆洞里)라고도 했다. 현재 논으로 조성되어 있는 앞버덩 일대가 이전에는 습지대여서 갈대가 많았으므로 갈골이라고 하던 것을 한자로 노동(蘆洞), 노동리(蘆洞里), 노리(蘆里)라고 한데서 이름이 유래되었다.
뒷버덩 - 노리, 척산리, 신흥리에 결쳐 있는 넓은 버덩. 신흥리는 뒷버덩 한가운데에 위치하고 있다. 노학동의 중심 마을이었던 노리에서 볼 때, 마을 뒤(북서쪽)에 위치한 버덩이므로 뒷버덩이라 했다. 한자로 표기하여 후평(後坪)이라고도 한다.
앞버덩 - 노리, 도리원리 마을 앞(남쪽)에 있는 넓은 들. 모두 논으로 조성되어 있으며, 과거에는 습지대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넓이 390여 정보, 한 해에 3,600석이 생산된다고 한다.
청초천(靑草川, 노동천, 갈골내) - 설악산(雪嶽山) 달마봉(達磨峰)에서 시작되어 동쪽으로 흘러 여러 골짜기 물을 척산(尺山)에서 합류하고 노학동을 거쳐 청초호로 유입되는 하천을 말한다. 예전에는 갈골내라고 하였고, 이를 한자로 노동천(蘆洞川)이라고 하였다.
나. 응골
노리에서 청초천 건너편 산기슭 마을이며, 전통적으로 노리(蘆里)에 속했다. 응골을 한자로 표기하여 응곡(應谷), 응동(應洞)이라고도 한다. 마을이 청대산(靑垈山), 두루봉 등 앞(남쪽)산에 가려서 응달 골짜기 지역이 되므로 응골이라고 하였다.
맷돌바위 - 맷돌바위골에 있는 바위. 바위 모양이 맷돌을 올려놓은 것 같은 형상이다.
맷돌바위골 - 마을 뒤(남쪽)에 있는 골짜기. 맷돌처럼 생긴 바위가 있다.
부엉이 바위 - 부엉이 바위골에 있는 바위. 바위 틈새에 부엉이 집이 있다.
부엉이 바위골 - 마을 뒤(남쪽), 맷돌바위골 서편에 있는 골짜기. 부엉이 바위가 있으므로 이름이 유래되었다.
사당골 - 제사를 지내던 사당(祀堂)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 도리원리(桃李源里)
노학동(蘆鶴洞) 지역 동북쪽 언덕 지대에 위치한 마을. 한자로는 도리원(桃李源)으로 표기하나, 구전으로는 되린덕이라고 부른다. 복숭아 나무가 많아서 도리원(桃李源)이라고 하였다 한다. 실제로 마을에는 과거에 복숭아나무가 많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복숭아 도(桃)에 대한 설명은 되지만, 오얏 리(李)에 대한 설명은 되지 못한다. 그러므로 위의 설명은 도리원(桃李源)이라는 한자 표기에 의거하여 후대에 만들어진 설명인 것 같다. 그것보다는 도리원(桃李源)이 인구가 적어 노리(蘆里)에 속할 때, 노리(蘆里) 마을 뒤 안쪽 둔덕이므로 뒤안둔덕, 뒤안덕, 뒤란덕이라고 하던 것이 되린턱으로 변하고, 이것을 한자로 유래와는 관계없이 발음이 비슷한 도리원으로 표기한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도 도리원을 속칭으로는 되린덕이라고 한다.
가운데 쇠골 - 마을 북쪽 골짜기.
됫꼬댕이 - 마을 뒤(북쪽) 높은 지대.
사지난골 - 마을 뒤(북서쪽) 골짜기.
아래 쇠골 - 마을 동북쪽 골짜기.
여우바위 - 사지난골에 있는 바위. 바위 틈새 굴에 여우가 살았다고 한다.
윗 쇠골 - 마을 북쪽에 있는 골짜기.
라. 이목리(梨木里)
노리 북쪽 골짜기 마을. 돌배나무골이란 골짜기가 지금도 있듯이 배나무가 많아서 배나무골이라고 하던 것을, 한자로 이목동(梨木洞), 이동(梨洞), 이목리(梨木里)라고 표기한 것이다.
도장생이 - 마을 제일 끝(북서쪽)에 있는 골짜기.
돌배나무골 - 마을 입구에서 왼편(서쪽)으로 갈라진 골짜기. 동우(東宇)대학 뒷편에 해당된다. 이전에는 돌배나무가 많이 있었다고 한다.
무박골 - 마을 북동쪽 골짜기.
밭버덩 - 마을 입구 왼쪽의 버덩. 바깥버덩이 줄어서 밭버덩으로 변화한 것으로 추정된다.
샘골천 - 마을 한가운데를 흐르는 시내. 1972년 제방 축조 공사 때, 당시 강원도지사(江原道知事) 박경원이 샘에서 나오는 물이므로 깨끗하다고 하여 샘골천이라고 명명하였다.
서낭골 - 마을 북쪽 골짜기.
서낭봉 - 서낭골에 있는 봉우리. 서낭당이 있다.
아랫 골짝 - 마을 아래(남쪽)에 있는 골짜기.
장자골(장재골) - 마을 북쪽 골짜기. 토지가 비옥하여 벼농사가 잘 되므로 부자가 될 수 있다는 뜻에서 장자골이란 이름이 붙었다. 일명 장재골이라고도 부른다.
큰말사니 - 마을 뒤(북쪽) 큰 골짜기.
화전(花煎)바위 - 큰말사니에 있었던 바위. 근래에 마을 앞 샘골천 제방 축조 공사 때 화전바위를 깨어서 제방 석축에 썼으므로 지금은 바닥만 남아 있다. 원래 바위가 넓고 평평해서 예전에 이 바위에서 화전(花煎) 놀이를 한데서 이름이 유래되었다.
마. 척산리(尺山里)
마을 뒷(남쪽)산이 마치 곡척(曲尺)이라는 둥근 자와 같이 생겼으므로 그 산을 척산(尺山)이라 하고 거기서 마을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하나 정확하지 않다.
가마소(沼) - 마을 서쪽에서 흘러 내려오는 개울 입구에 있는 소(沼). 소의 모양이 가마솥처럼 생겼다하여 현지 발음으로 가매소라고 불리었다.
가마소 개울 - 마을 서쪽 학사평(鶴沙坪) 쪽에서 흘러 내려오는 개울. 마을 입구에서 목우(牧牛)재 개울과 합쳐 청초천(靑草川)을 형성한다.
노적(露積)바위 - 암지동 입구에 있는 바위. 모양이 노적가리를 쌓아 놓은 것 같다.
딴봉 - 척산리(尺山里) 마을 중의 하나로 남동쪽 마을이다.
마치장(馬馳場) - 마을 동쪽 산기슭 벌판. 이전에 말을 기르던 곳으로 추정된다.
만호첨사유허(萬戶僉使遺墟) - 딴봉 마을에 있는 터. 예전에 수군만호첨사(水軍萬戶僉使)가 거느린 부대가 있던 자리라고 한다.
망태골 - 마을 서쪽에 있는 골짜기.
명가산 - 주봉산(朱鳳山)과 목우(牧牛)재 사이에 있는 산. 개인의 것이 아니고, 면(面)의 가산(家産), 즉 면의 재산이라는 뜻의 면가산(面家産)이 변해서 명가산이 되었다고 한다.
명당골 - 마을 서쪽 가매소 개울 상류에 있는 골짜기. 풍수지리상 명당자리가 있다고 한다.
목우재 - 설악동과 척산리를 연결하는 고개.
목우재 - 개울 마을 남쪽 목우재 쪽에서 흘러 내려오는 개울. 마을 입구에서 가매소 개울과 합쳐져 청초천을 형성한다.
물안골 - 마을 동남쪽에 위치한 골짜기. 주봉산(朱鳳山)으로 이어진다. 예전에 물레방아가 있었으므로 물방아골이라 부르던 것이 물안골로 변화된 것으로 추정된다.
범에너레 - 암지동 끝 달마봉(達磨峰) 북쪽 기슭에 있는 큰 암반. 너레는 너럭바위, 즉 넓고 평평한 큰 암반을 뜻하며, 범이 미끄러졌다고 하여 범에너레라 부른다.
병풍(屛風)바위 - 마을 서쪽 망태골에 있는 바위. 바위 모양이 병풍을 쳐 놓은 것 같다고 한다.
사당골 - 마을 동쪽 응골 마을과의 경계에 위치한 골짜기.
서산태골 - 마을 서쪽에 위치한 골짜기. 서쪽에 있는 산사태가 난 골짜기라는 뜻에서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암지동(암지골) - 마을 남서쪽에 위치한 골짜기. 옛날에 암자가 있었으므로 암자골이라고 하던 것이 암지골, 암지동으로 변하였다.
양짓말 - 척산(尺山)에 있는 마을 중의 하나. 가매소(가마소) 개울 남쪽 마을.
응달말 - 척산(尺山)에 있는 마을 중의 하나, 양짓말 건너편에 있는 마을.
작은 너레골 - 마을 서쪽에 위치한 골짜기. 큰 너레골에서 왼편(북쪽)으로 갈라진다. 너레는 너럭바위 즉, 넓고 평평한 큰 암반을 뜻한다.
작은 늑동골 - 마을 서북쪽에 있는 골짜기. 큰 늑동골 바로 남쪽이며, 현재 종합경기장이 자리 잡았다.
주봉산(朱鳳山, 朱峰山, 주왕재) - 마을 서북쪽 척산리(尺山里)와의 경계에 있는 산. 해발 338m
증골 - 마을 서쪽에 위치한 골짜기.
척산교(尺山橋) - 청초천 상류 척산 마을 입구에 놓인 다리.
척산리(尺山里) - 본래 노리(蘆里)의 지역으로서 척산(尺山) 밑이 되므로 척산이라 하였는데, 1942년 속초읍제 실시에 따라 학사평(鶴沙坪)을 병합하여 척산리(尺山里)라 하여 노리에서 갈라져 독립하였다.
큰 늑동골 - 마을에서 서북쪽 학사평 쪽으로 이어진 골짜기. 바로 남쪽이 작은 늑동골이다.
척산 온천(尺山溫泉) - 척산에 있는 온천.
파명당 - 목우재와 달마봉(達磨峰) 사이에 있는 터. 현재 송신탑이 세워져 있다. 전설에 의하면, 명당자리가 탐이 나서 파보니 그곳에서 학이 세 마리가 나와 한 마리는 양양군(襄陽郡) 강현면 강선리 쪽으로, 다른 한 마리는 보광사(普光寺) 쪽으로, 또 다른 한 마리는 학사평(鶴沙坪) 쪽으로 날아갔다고 한다.
탑상골 - 마을 서쪽 암지동에서 갈라진 골짜기 노학동 3층 석탑(塔)이 있는 곳이다.
바. 신흥리(新興里)
5·16 군사정변 후 군사 정부의 개간 정책에 따라, 1962년 다른 지역에서 많은 사람들이 집단 이주되어 뒷버덩에 정착시킨 마을이다. 그러나 얼마 안 되어 1963년 동(洞)제를 실시하게 됨에 따라, 주변의 다른 동리와 함께 노학동에 속하게 되었다. 그러나 신흥리라는 땅이름은 계속 사용되고 있다.
상에동네(상에, 신흥상) 학사평 끝(서쪽) 마을. 새로 집단 이주해 온 사람들이 건설한 마을이므로 지리적으로 가까운 학사평(鶴沙坪)에 소속되지 않고 신흥리에 소속 되었으며, 신흥리 위쪽(서쪽)에 위치하였으므로 신흥상(新興上), 또는 상에라 불린다.
신흥교(新興橋) - 청초천에 놓여 신흥 2리(新興二里)와 척산리(尺山里)를 연결하는 다리.
신흥 2리(新興二里, 신흥하) - 노리와 척산 사이의 뒷버덩에 위치한 마을. 신흥 1리(新興一里) 밑(남동쪽)에 해당하므로 신흥하(新興下)라고도 부른다.
신흥 1리(新興一里) - 설악(雪嶽) 한화리조트 바로 앞(남동쪽)마을. 뒷버덩에 건설된 신흥리(新興里)의 중심 마을이다.
사. 학사평(鶴沙坪) . 자활촌(自活村)
학사평의 원래 이름은 딱사벌이었는데, 후에 학이 내려와 앉는 벌판이라고 하여 ‘딱’자 대신 ‘학(鶴)’자를 써서 학사평(鶴沙坪)으로 개명하였다고 한다. 딱사벌은 농사가 잘 안되는 딱한 벌판이라는 뜻이라고 하는데, 요즘은 발음상 딱사발이라고 한다.
자활촌(自活村) 학사평 벌판 남쪽에 위치한 마을로, 원래 마을이 없었으나 1961년 군사 혁명 정부에 의한 집단 이주로 새로 건설된 마을이다. 자활촌은 말 그대로 스스로 살아간다는 취지에서 붙여진 것이다.
구복암(求福菴) - 심방골에 있는 암자.
명당골 학사평(鶴沙坪) 남서쪽 골짜기.
미시령(彌矢嶺) - 속초와 인제를 연결하는 고개.
심방골 - 마을 남서쪽, 명당골 서쪽 골짜기. 달마봉(達磨峰)으로 이어진다.
옹장골 - 마을 남서쪽, 심방골 서쪽 골짜기. 계조암(繼組菴) 밑으로 이어진다.
원암교(元岩橋) - 용촌천(龍村川) 상류에 놓여 학사평과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를 연결하는 다리.
코끼리바위 - 명당골에 있는 바위. 바위 형상이 코끼리처럼 생겼다.
큰령 - 미시령(彌矢嶺).
호랑바위 - 명당골에 있는 바위. 바위 형상이 호랑이처럼 생겼다.
6. 노학동(蘆鶴洞)
1966년 동(洞)제 실시 때, 종래의 노리(蘆里), 도리원리(桃李源里), 이목리(梨木里), 척산리(尺山里), 신흥리(新興里)를 합쳐서 노학동(蘆鶴洞)이라고 명명하였다. 노학이란 이름은 노리(蘆里)의 ‘노(蘆)’자와 척산리(尺山里) 학사평(鶴沙坪)의 ‘학(鶴)’자를 딴 것이다.
조선 후기 읍지(邑誌)에는 현재의 노학동(蘆鶴洞) 지역에는 행정상 동리가 없었다. 그러므로 당시에는 사람들이 많이 거주하지 않았던 것을 알 수 있고, 행정상 논산리(論山里)에 속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 후 사람들의 거주가 늘어 일제 시대부터 행정상 노리(蘆里)가 신설되었다. 습지대의 개발로 인구가 늘어 1942년 속초면(束草面)이 속초읍(束草邑)으로 승격될 때, 노리(蘆里)가 노리(蘆里), 도리원리(桃李源里), 이목리(梨木里), 척산리(尺山里)의 4동리로 나뉘어졌다.
그리고 1962년 타도 지역에서 많은 인구가 뒷버덩으로 집단 이주해 와서 신흥리(新興里)가 신설되었으나, 1963년 속초시(束草市)로 승격되고 1966년 동(洞)제가 실시됨에 따라 종래의 노리(蘆里) 지역이 모두 합쳐져서 노학동(蘆鶴洞)으로 명명되었다.
1998년 행정동의 통폐합으로 인해 노학동과 교동 일부가 노학동으로 통합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가. 노리(蘆里)
노학동의 중심 마을이며, 갈골, 노동(蘆洞), 노동리(蘆洞里)라고도 했다. 현재 논으로 조성되어 있는 앞버덩 일대가 이전에는 습지대여서 갈대가 많았으므로 갈골이라고 하던 것을 한자로 노동(蘆洞), 노동리(蘆洞里), 노리(蘆里)라고 한데서 이름이 유래되었다.
뒷버덩 - 노리, 척산리, 신흥리에 결쳐 있는 넓은 버덩. 신흥리는 뒷버덩 한가운데에 위치하고 있다. 노학동의 중심 마을이었던 노리에서 볼 때, 마을 뒤(북서쪽)에 위치한 버덩이므로 뒷버덩이라 했다. 한자로 표기하여 후평(後坪)이라고도 한다.
앞버덩 - 노리, 도리원리 마을 앞(남쪽)에 있는 넓은 들. 모두 논으로 조성되어 있으며, 과거에는 습지대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넓이 390여 정보, 한 해에 3,600석이 생산된다고 한다.
청초천(靑草川, 노동천, 갈골내) - 설악산(雪嶽山) 달마봉(達磨峰)에서 시작되어 동쪽으로 흘러 여러 골짜기 물을 척산(尺山)에서 합류하고 노학동을 거쳐 청초호로 유입되는 하천을 말한다. 예전에는 갈골내라고 하였고, 이를 한자로 노동천(蘆洞川)이라고 하였다.
나. 응골
노리에서 청초천 건너편 산기슭 마을이며, 전통적으로 노리(蘆里)에 속했다. 응골을 한자로 표기하여 응곡(應谷), 응동(應洞)이라고도 한다. 마을이 청대산(靑垈山), 두루봉 등 앞(남쪽)산에 가려서 응달 골짜기 지역이 되므로 응골이라고 하였다.
맷돌바위 - 맷돌바위골에 있는 바위. 바위 모양이 맷돌을 올려놓은 것 같은 형상이다.
맷돌바위골 - 마을 뒤(남쪽)에 있는 골짜기. 맷돌처럼 생긴 바위가 있다.
부엉이 바위 - 부엉이 바위골에 있는 바위. 바위 틈새에 부엉이 집이 있다.
부엉이 바위골 - 마을 뒤(남쪽), 맷돌바위골 서편에 있는 골짜기. 부엉이 바위가 있으므로 이름이 유래되었다.
사당골 - 제사를 지내던 사당(祀堂)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 도리원리(桃李源里)
노학동(蘆鶴洞) 지역 동북쪽 언덕 지대에 위치한 마을. 한자로는 도리원(桃李源)으로 표기하나, 구전으로는 되린덕이라고 부른다. 복숭아 나무가 많아서 도리원(桃李源)이라고 하였다 한다. 실제로 마을에는 과거에 복숭아나무가 많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복숭아 도(桃)에 대한 설명은 되지만, 오얏 리(李)에 대한 설명은 되지 못한다. 그러므로 위의 설명은 도리원(桃李源)이라는 한자 표기에 의거하여 후대에 만들어진 설명인 것 같다. 그것보다는 도리원(桃李源)이 인구가 적어 노리(蘆里)에 속할 때, 노리(蘆里) 마을 뒤 안쪽 둔덕이므로 뒤안둔덕, 뒤안덕, 뒤란덕이라고 하던 것이 되린턱으로 변하고, 이것을 한자로 유래와는 관계없이 발음이 비슷한 도리원으로 표기한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도 도리원을 속칭으로는 되린덕이라고 한다.
가운데 쇠골 - 마을 북쪽 골짜기.
됫꼬댕이 - 마을 뒤(북쪽) 높은 지대.
사지난골 - 마을 뒤(북서쪽) 골짜기.
아래 쇠골 - 마을 동북쪽 골짜기.
여우바위 - 사지난골에 있는 바위. 바위 틈새 굴에 여우가 살았다고 한다.
윗 쇠골 - 마을 북쪽에 있는 골짜기.
라. 이목리(梨木里)
노리 북쪽 골짜기 마을. 돌배나무골이란 골짜기가 지금도 있듯이 배나무가 많아서 배나무골이라고 하던 것을, 한자로 이목동(梨木洞), 이동(梨洞), 이목리(梨木里)라고 표기한 것이다.
도장생이 - 마을 제일 끝(북서쪽)에 있는 골짜기.
돌배나무골 - 마을 입구에서 왼편(서쪽)으로 갈라진 골짜기. 동우(東宇)대학 뒷편에 해당된다. 이전에는 돌배나무가 많이 있었다고 한다.
무박골 - 마을 북동쪽 골짜기.
밭버덩 - 마을 입구 왼쪽의 버덩. 바깥버덩이 줄어서 밭버덩으로 변화한 것으로 추정된다.
샘골천 - 마을 한가운데를 흐르는 시내. 1972년 제방 축조 공사 때, 당시 강원도지사(江原道知事) 박경원이 샘에서 나오는 물이므로 깨끗하다고 하여 샘골천이라고 명명하였다.
서낭골 - 마을 북쪽 골짜기.
서낭봉 - 서낭골에 있는 봉우리. 서낭당이 있다.
아랫 골짝 - 마을 아래(남쪽)에 있는 골짜기.
장자골(장재골) - 마을 북쪽 골짜기. 토지가 비옥하여 벼농사가 잘 되므로 부자가 될 수 있다는 뜻에서 장자골이란 이름이 붙었다. 일명 장재골이라고도 부른다.
큰말사니 - 마을 뒤(북쪽) 큰 골짜기.
화전(花煎)바위 - 큰말사니에 있었던 바위. 근래에 마을 앞 샘골천 제방 축조 공사 때 화전바위를 깨어서 제방 석축에 썼으므로 지금은 바닥만 남아 있다. 원래 바위가 넓고 평평해서 예전에 이 바위에서 화전(花煎) 놀이를 한데서 이름이 유래되었다.
마. 척산리(尺山里)
마을 뒷(남쪽)산이 마치 곡척(曲尺)이라는 둥근 자와 같이 생겼으므로 그 산을 척산(尺山)이라 하고 거기서 마을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하나 정확하지 않다.
가마소(沼) - 마을 서쪽에서 흘러 내려오는 개울 입구에 있는 소(沼). 소의 모양이 가마솥처럼 생겼다하여 현지 발음으로 가매소라고 불리었다.
가마소 개울 - 마을 서쪽 학사평(鶴沙坪) 쪽에서 흘러 내려오는 개울. 마을 입구에서 목우(牧牛)재 개울과 합쳐 청초천(靑草川)을 형성한다.
노적(露積)바위 - 암지동 입구에 있는 바위. 모양이 노적가리를 쌓아 놓은 것 같다.
딴봉 - 척산리(尺山里) 마을 중의 하나로 남동쪽 마을이다.
마치장(馬馳場) - 마을 동쪽 산기슭 벌판. 이전에 말을 기르던 곳으로 추정된다.
만호첨사유허(萬戶僉使遺墟) - 딴봉 마을에 있는 터. 예전에 수군만호첨사(水軍萬戶僉使)가 거느린 부대가 있던 자리라고 한다.
망태골 - 마을 서쪽에 있는 골짜기.
명가산 - 주봉산(朱鳳山)과 목우(牧牛)재 사이에 있는 산. 개인의 것이 아니고, 면(面)의 가산(家産), 즉 면의 재산이라는 뜻의 면가산(面家産)이 변해서 명가산이 되었다고 한다.
명당골 - 마을 서쪽 가매소 개울 상류에 있는 골짜기. 풍수지리상 명당자리가 있다고 한다.
목우재 - 설악동과 척산리를 연결하는 고개.
목우재 - 개울 마을 남쪽 목우재 쪽에서 흘러 내려오는 개울. 마을 입구에서 가매소 개울과 합쳐져 청초천을 형성한다.
물안골 - 마을 동남쪽에 위치한 골짜기. 주봉산(朱鳳山)으로 이어진다. 예전에 물레방아가 있었으므로 물방아골이라 부르던 것이 물안골로 변화된 것으로 추정된다.
범에너레 - 암지동 끝 달마봉(達磨峰) 북쪽 기슭에 있는 큰 암반. 너레는 너럭바위, 즉 넓고 평평한 큰 암반을 뜻하며, 범이 미끄러졌다고 하여 범에너레라 부른다.
병풍(屛風)바위 - 마을 서쪽 망태골에 있는 바위. 바위 모양이 병풍을 쳐 놓은 것 같다고 한다.
사당골 - 마을 동쪽 응골 마을과의 경계에 위치한 골짜기.
서산태골 - 마을 서쪽에 위치한 골짜기. 서쪽에 있는 산사태가 난 골짜기라는 뜻에서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암지동(암지골) - 마을 남서쪽에 위치한 골짜기. 옛날에 암자가 있었으므로 암자골이라고 하던 것이 암지골, 암지동으로 변하였다.
양짓말 - 척산(尺山)에 있는 마을 중의 하나. 가매소(가마소) 개울 남쪽 마을.
응달말 - 척산(尺山)에 있는 마을 중의 하나, 양짓말 건너편에 있는 마을.
작은 너레골 - 마을 서쪽에 위치한 골짜기. 큰 너레골에서 왼편(북쪽)으로 갈라진다. 너레는 너럭바위 즉, 넓고 평평한 큰 암반을 뜻한다.
작은 늑동골 - 마을 서북쪽에 있는 골짜기. 큰 늑동골 바로 남쪽이며, 현재 종합경기장이 자리 잡았다.
주봉산(朱鳳山, 朱峰山, 주왕재) - 마을 서북쪽 척산리(尺山里)와의 경계에 있는 산. 해발 338m
증골 - 마을 서쪽에 위치한 골짜기.
척산교(尺山橋) - 청초천 상류 척산 마을 입구에 놓인 다리.
척산리(尺山里) - 본래 노리(蘆里)의 지역으로서 척산(尺山) 밑이 되므로 척산이라 하였는데, 1942년 속초읍제 실시에 따라 학사평(鶴沙坪)을 병합하여 척산리(尺山里)라 하여 노리에서 갈라져 독립하였다.
큰 늑동골 - 마을에서 서북쪽 학사평 쪽으로 이어진 골짜기. 바로 남쪽이 작은 늑동골이다.
척산 온천(尺山溫泉) - 척산에 있는 온천.
파명당 - 목우재와 달마봉(達磨峰) 사이에 있는 터. 현재 송신탑이 세워져 있다. 전설에 의하면, 명당자리가 탐이 나서 파보니 그곳에서 학이 세 마리가 나와 한 마리는 양양군(襄陽郡) 강현면 강선리 쪽으로, 다른 한 마리는 보광사(普光寺) 쪽으로, 또 다른 한 마리는 학사평(鶴沙坪) 쪽으로 날아갔다고 한다.
탑상골 - 마을 서쪽 암지동에서 갈라진 골짜기 노학동 3층 석탑(塔)이 있는 곳이다.
바. 신흥리(新興里)
5·16 군사정변 후 군사 정부의 개간 정책에 따라, 1962년 다른 지역에서 많은 사람들이 집단 이주되어 뒷버덩에 정착시킨 마을이다. 그러나 얼마 안 되어 1963년 동(洞)제를 실시하게 됨에 따라, 주변의 다른 동리와 함께 노학동에 속하게 되었다. 그러나 신흥리라는 땅이름은 계속 사용되고 있다.
상에동네(상에, 신흥상) 학사평 끝(서쪽) 마을. 새로 집단 이주해 온 사람들이 건설한 마을이므로 지리적으로 가까운 학사평(鶴沙坪)에 소속되지 않고 신흥리에 소속 되었으며, 신흥리 위쪽(서쪽)에 위치하였으므로 신흥상(新興上), 또는 상에라 불린다.
신흥교(新興橋) - 청초천에 놓여 신흥 2리(新興二里)와 척산리(尺山里)를 연결하는 다리.
신흥 2리(新興二里, 신흥하) - 노리와 척산 사이의 뒷버덩에 위치한 마을. 신흥 1리(新興一里) 밑(남동쪽)에 해당하므로 신흥하(新興下)라고도 부른다.
신흥 1리(新興一里) - 설악(雪嶽) 한화리조트 바로 앞(남동쪽)마을. 뒷버덩에 건설된 신흥리(新興里)의 중심 마을이다.
사. 학사평(鶴沙坪) . 자활촌(自活村)
학사평의 원래 이름은 딱사벌이었는데, 후에 학이 내려와 앉는 벌판이라고 하여 ‘딱’자 대신 ‘학(鶴)’자를 써서 학사평(鶴沙坪)으로 개명하였다고 한다. 딱사벌은 농사가 잘 안되는 딱한 벌판이라는 뜻이라고 하는데, 요즘은 발음상 딱사발이라고 한다.
자활촌(自活村) 학사평 벌판 남쪽에 위치한 마을로, 원래 마을이 없었으나 1961년 군사 혁명 정부에 의한 집단 이주로 새로 건설된 마을이다. 자활촌은 말 그대로 스스로 살아간다는 취지에서 붙여진 것이다.
구복암(求福菴) - 심방골에 있는 암자.
명당골 학사평(鶴沙坪) 남서쪽 골짜기.
미시령(彌矢嶺) - 속초와 인제를 연결하는 고개.
심방골 - 마을 남서쪽, 명당골 서쪽 골짜기. 달마봉(達磨峰)으로 이어진다.
옹장골 - 마을 남서쪽, 심방골 서쪽 골짜기. 계조암(繼組菴) 밑으로 이어진다.
원암교(元岩橋) - 용촌천(龍村川) 상류에 놓여 학사평과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를 연결하는 다리.
코끼리바위 - 명당골에 있는 바위. 바위 형상이 코끼리처럼 생겼다.
큰령 - 미시령(彌矢嶺).
호랑바위 - 명당골에 있는 바위. 바위 형상이 호랑이처럼 생겼다.